합동추모관

박동렬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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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8월경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에 재학하던 중 대구 동촌비행장의 확장공장에 강제 동원되었다. 

이에 그를 비롯한 안동농림학교의 제8·9·10회생들은 일제의 부당한 식민지 통치에 항거하기 위해 공사 현장에서 항일결사
대한독립회복연구단(大韓獨立恢復硏究團)을 조직했다. 이러한 결사 조직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공사에 동원되었던 일반인들까지 참가하면서 항일투쟁의 강도를 높여 갔다.

대한독립회복연구단은 민족의식 고취에 머물지 않고,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일제의 후방을 교란시키는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안동시내의 일본인 기관 및 요인의 습격 등을 투쟁 방침으로 삼았다. 박동렬 등은 기회를 엿보면서 거사를 준비하던 중, 
1945년 3월 10일 소위 일본육군기념일에 총궐기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거사를 추진해 갔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사전에 발각됨으로써 박동렬을 비롯한 단원 전원이 체포되었다.

이 일로 옥고를 치르던 그는 8.15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16일에 출옥했다. 이후 평범하게 살다가 2008년 10월 27일 경북대병원에서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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